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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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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프라이즈 이야기(54, 마지막회)-종전 및 그 이후 엔터프라이즈 이야기

오끼나와 함락 이후 일본의 처지는 급전직하로 추락해 갔다.
마리애나에서 출격한 B-29는 일본의 대도시들뿐만 아니라 중소도시까지 대부분 불태워 버렸고, 일본 연안에 투하된 기뢰와 미잠수함들 때문에 섬나라인 일본의 해상교통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5월 28일에 제38기동부대로 바뀐 미국의 고속항공모함 기동부대는 1945년 7월 10일부터 일본 본토 공습에 나서서 도꾜를 공습했고, 14일에는 홋까이도까지 진출하여 폭격을 가했다.
7월 15일에는 고속전함 사우스다코타, 인디애나, 메사추세츠가 도꾜에서 북동쪽으로 440km 거리에 위치한 데이코쿠 제철소에 포격을 가했다.
이제 미국의 전함이 일본 본토에 직접 포격을 가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혼슈 북부와 홋까이도 공격을 마치고 남하한 제38기동부대는 7월 24일부터 28일까지 구레 군항을 비롯한 일본 남부 해안에 맹공을 가하여 겨우 살아남아있던 전함 이세, 히우가, 하루나, 중순양함 도네, 아오바 등을 위시한 수많은 함정들을 격침했다.
7월 31일부터 해상에서 연료보급을 실시한 제38기동부대는 다시 북상하여 8월 9일부터 홋까이도와 한반도, 혼슈 북부를 강타한 다음 8월 10일부터 도꾜 인근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처한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일본의 전쟁 지도부는 미군의 본토상륙에 대비하여 10,000 대의 가미까제 특공기를 준비하고, 1억 옥쇄의 구호 아래 민간인들에게 죽창까지 들려서 군사훈련을 시키는 등 본토결전 준비에 광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지도부의 이런 미친 짓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소련이 일본과의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만주를 침공하자 드디어 끝났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버섯구름)


단 한 발로 B-29 2,000 대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원자폭탄을 보유한 미국에 맞서서 더 이상 저항한다는 것은 일본민족의 멸절을 가져올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의 전쟁지도부는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1945년 8월 15일에 연합국측에 무조건 항복했다.
이로써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3년 8개월 만에 끝났다.
항복조인식은 1945년 9월 2일에 도꾜만 내에 정박한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열렸다.

 

(1945년 9월 2일에 도쿄 만에 정박한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열린 항복조인식의 한 장면. 연합군 대표인 맥아더 장군이 지켜보는 가운에 우메즈 장군이 일본군을 대표하여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엔터프라이즈는 진주만 기습 당일부터 태평양 전쟁에 참가하여 1945년 5월 16일에 전쟁에서 물러날 때까지 3년 6개월 동안 미해군이 실시한 22회의 항공모함 작전 중에서 20회의 작전에 참가했다.
이 기간 동안 엔터프라이즈의 항공대는 71척의 적함을 격침하고, 최소한 192척의 적함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입혔으며, 엔터프라이즈의 대공포와 협력하여 911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그 대가로 엔터프라이즈는 함정 승무원 147명, 항공기 승무원 238명 등 총 385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퓨젯 사운드 해군 조선소에서 수리를 마친 엔터프라이즈는 1945년 9월에 진주만에 가서 새로이 제55야간항공단을 적재했다.
1945년 9월 25일, 엔터프라이즈는 진주만을 떠나 파나마 운하를 경유하여 뉴욕을 향했다.
엔터프라이즈 최후의 임무인 4번의 마법 양탄자 항해(Magic Carpet voyage)중 첫번째 항해였다.
마법 양탄자 항해는 해외에 나가있던 미군들을 귀국시키는 임무였다.
엔터프라이즈는 환자들과 일본군에게 잡혀있다가 석방된 포로들을 포함한 1,141명의 장병을 싣고, 10월 17일에 뉴욕에 도착하여 27일에 열리는 ‘해군의 날’(Navy Day) 행사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렀다.

 

(뉴욕 항에 계류한 엔터프라이즈를 보려고 몰려든 인파들. 1945년 10월 17일)

 


태평양 전쟁에서 엔터프라이즈의 활약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연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관심의 초점이 되어 이 기간 동안 허드슨 강 26번 부두에 정박해 있던 엔터프라이즈를 찾은 관람객의 수는 25만 명을 넘었다.
엔터프라이즈는 27일 오전에는 트루먼 대통령을 태우고 정박한 함선들이 전방을 통과하며 해상 열병식을 치렀고, 그날 오후에는 엔터프라이즈의 군악대가 수천명의 해군 및 해병대의 선두에 서서 수백만 시민의 열화 같은 환호를 받으며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 승전 퍼레이드(World War 2 Victory Parade)를 이끌었다.
저녁이 되자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제55야간 항공단이 등화를 환하게 켜고 뉴욕시 상공에서 편대비행을 실시했다.
 
엔터프라이즈의 영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945년 11월에 2번째 마법양탄자 항해를 위하여 영국의 사우댐턴 항에 들렀을 때 엔터프라이즈는  영국 해군 최고의 명예인 해군성 깃발(Admiralty Pennant)을 받은 최초의 –그리고 오늘날까지 유일한- 외국 함정이 되었다.

 

(British Admiralty Pennant)


이 항해에서 엔터프라이즈는 4,668명의 장병들을 유럽에서 귀국시켰고, 3번째 항해에서 다시 사우댐턴 항에 가서 4,413 명의 장병들을 싣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뉴욕 항에 입항했다.
마지막 마법양탄자 항해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아조레스 제도에서 3,557 명의 장병을 싣고 1946년 1월 17일에 뉴욕 항에 입항했다.
다음날인 1946년 1월 18일, 엔터프라이즈는 뉴저지 주의 베이욘에 정박하여 12년 6개월간의 긴 휴식에 들어갔다.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해체될 때까지 결코 자력으로 항해를 하지 않았다.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현역 함정의 지위를 유지하던 엔터프라이즈는 1947년 2월 17일에야 비로소 퇴역하여 대서양예비함대에 편입되었다.
예비함으로서 1952년에는 CVA-6 가 되었다가, 1953년 8월 8일부터는 CVS-6가 되었다.
엔터프라이즈가 다시 현역에 복귀할 가능성은 없었다.
1945년 9월 10일에 에섹스 급의 후계함인 CVB-41 Midway가 취역했고, 이미 예정되었던 에섹스 급의 건조가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에섹스 급보다 더 낡은 함정인 엔터프라이즈를 개조하여 현역에 복귀시킨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엔터프라이즈가 모스볼 상태로 지내는 동안 이 배를 해상박물관으로 만들어 영구보존하고자 하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그 첫번째 시도로서 1946년에 뉴욕 주 의회가 엔터프라이즈를 뉴욕 주에 기증해 줄 것을 해군 측에 요청했으나, 예산의 뒷받침이 되지 않아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3년 후인 1949년에 샌프란시스코 과학 및 산업 박물관(San Francisco Museum of Science & Industry) 측에서 샌프란시스코 만에 있는 Treasure Island Naval Air Station 에 엔터프라이즈를 영구 전시하자는 안을 내었으나 역시 예산 문제 때문에 해군에서 거절했다.
1954년, 엔터프라이즈에서 근무했던 장병들이 모여 시카고에서 엔터프라이즈 협회(USS Enterprise CV-6 Asoociation)를 만들었다.

1956년에 해군이 더 이상 모스볼 상태로 두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함선들의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그 중에 전함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다코타, 워싱턴의 이름과 함께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엔터프라이즈가 당장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엔터프라이즈 협회는 어떻게든 엔터프라이즈를 살리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했다.
자비로 신문에 광고를 내고, 엔터프라이즈 기동부대의 사령관을 지냈던 핼시 원수의 지원을 받아서 엔터프라이즈 협회는 엔터프라이즈를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여 해상 박물관으로 만들라고 의회에 압력을 가했다.

 

(엔터프라이즈 협회 제3차 총회. 350 명 이상이 참석한 가운데 1956년 9월 1일 뉴욕의 쉐라톤 애스터 호텔에서 열린 이 총회에서 해체 위기에 처한 엔터프라이즈 구명운동을 벌이자는 결의가 채택되었다.)


미의회는 일단 엔터프라이즈를 영구보존하자는 취지에는 동의했으나 이번에도 문제는 돈이었다.
엔터프라이즈를 해상박물관으로 만들고 유지하려면, 소요금액의 거의 전부를 국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모스볼 상태의 엔터프라이즈를 적당한 지역으로 옮겨서 해상 박물관으로 만들고 유지하려면 최초의 6개월 동안에만도 최소한 2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의회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당시 미국 국내의 분위기는 가급적 빨리 제2차 대전으로 마무리된 암울한 20세기의 전반기를 잊어버리고, 미국이 명실상부한 주역을 맡게 된 20세기 후반기의 희망을 주로 이야기하며 특히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 관심을 쏟는 분위기였다.
세계의 운명을 결정지은 거대한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을 상징하는 위대한 군함을 보존해야만 할 역사적인 필요성을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깨달으려면 아직도 세월이 더 흘러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엔터프라이즈의 영구 보존을 위하여 납세자들의 세금인 국고를 매년 수백만 달러씩 지출하자고 주장할만큼 투철한 역사의식과 용기를 가진 의원은 거의 없었다.
이후 세월이 좀 더 흐르자 대다수의 미국인들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함정들을 영구보존해야만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어, 1974년에 퇴역한 에섹스 급 항공모함인 인트레피드나 몇 번씩이나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하다가 1992년에 최종적으로 퇴역한 아이오와급 전함인 미주리 등은 해상박물관으로 살아남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어떻게든 엔터프라이즈를 구하기 위하여 대중적인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해오는 엔터프라이즈 협회와 말만 그럴싸하게 하면서 엔터프라이즈의 영구 보존을 위한 예산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정치적 위험을 무릅쓸 생각은 전혀 없는 의회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지속적으로 엔터프라이즈의 모스볼 비용만 지출하고 있던 해군은 결국 엔터프라이즈 협회 측과 협상을 시도했다.
엔터프라이즈 협회 측도 이미 말과 행동이 다른 의회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엔터프라이즈를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순순히 해군과의 협상에 임했다.
이 협상에서 협회 측은 엔터프라이즈를 구하자는 대중운동을 중단, 해군으로 하여금 엔터프라이즈를 고철로 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줌으로써 모스볼 유지에 들어가는 예산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해 주기로 합의했다.
대신 해군 측은 곧 건조에 들어갈 예정이던 세계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인 CVN-65 에 ‘엔터프라이즈’ 의 함명을 쓰기로 하고, 또한 엔터프라이즈의 어느 부분이든지 협회가 이 위대한 항공모함을 기념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은 자유롭게 떼어가서 적당한 기관에 기증하거나 적합한 장소에 옮겨 전시하는 것을 허용했다.
또한 엔터프라이즈의 사령탑 부분을 애나폴리스 해군-해병 사관학교의 스터디움에 옮겨서 사관학교 풋볼팀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으나, 예산문제로 취소되고 대신 풋볼 팀을 위한 건물을 ‘엔터프라이즈 타워’로 명명했다.
엔터프라이즈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을 위시한 많은 사람들이 새러토가가 해중원폭실험에 동원되어 사라진 지금, 태평양 전쟁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전했고, 세계 해전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린 함정으로서 역사적 가치로 따져볼 때 콘스티튜션, 빅토리, 콘스텔레이션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 엔터프라이즈를 예산 몇 푼 아끼려고 한낱 고철로 처분하려는 의회와 해군에 대하여 분통을 터뜨렸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58년 7월 1일 , 엔터프라이즈는 해체되기 위하여 매각되었다.

 

(뉴저지 주의 커니에서 해체작업을 기다리는 엔터프라이즈. 1958년 가을에 찍은 사진이다.)


엔터프라이즈의 해체 작업은 1960년 6월에 끝났다.
1984년에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 해군항공기지의 해군항공박물관에 영구적인 엔터프라이즈 전시실이 마련되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헌, 사진 및 기타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엔터프라이즈의 종은 미해군사관학교에 있는데 전통적으로 웨스트포인트와의 시합에서 이겼을 때에만 울린다고 한다.

 

(애너폴리스에 있는 미해군사관학교의 밴크로프트 홀 앞에 있는 엔터프라이즈의 종)


엔터프라이즈의 고물에 붙어있던 길이 4.8m, 무게 1톤짜리 이름판은 뉴저지주 리버베일의 참전용사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뉴저지 주 리버베일에 있는 엔터프라이즈의 함미 이름판)


워싱턴 D.C. 의 Washington Navy Yard 에는 엔터프라이즈의 닻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엔터프라이즈의 물품들 몇 가지가 CVN-65 엔터프라이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 참고자료

(1)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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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해전사> 이정수. 남영문화사, 1981년
<타임라이프북스 - 회오리치는 일장기 편, 남태평양전투 편, 필리핀 탈환 편, 태평양 해저전 편, B-29의 일본폭격 편, 일본본토로의 진격 편> 한국일보-타임라이프사, 1981년
<니미츠 전기> 김주식 역, 신서원, 1997년
<승리와 패배- 제8권 과달카날, 제12권 B-29, 제14권 오끼나와, 제16권 가미까제 특공대> 동도문화사, 1982년
<연합함대, 그 출범에서 침몰까지> 박재석 & 남창훈, 가람기획, 2005

(2)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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